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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손님 6
게이코가 장례식에 입고 갈 옷을 이것저것 궁리하고 있는데 옆방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린다.
"게이코, 넌 이번 겨울에 코트를 산다고 돈을 적립하고 있더니 어떻게 되는 거니? 빨리 사지 않으면 겨울이 끝나고 말 텐데."
게이코는 옷을 손에 들고 망설이고 있었으나 밝은 목소리로,
"응, 올겨울은 참겠어요. 내년 겨울에......"
하고 대답했다.
"해마다 너는 내년으로 미루고만 있구나. 내년 같으면 에미가 일을 해서 좋은 것 사주겠다."
게이코는 어머니를 향해 밝고 스스럼없는 표정으로 대답한다.
"어머니도 참...... 그런 건 어머니가 걱정 안해도 돼요."
낡은 옷장을 열어 다시 이것저것 옷을 만져 보면서 게이코는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내일 나고야의 장례식에 가려 해도 입을 것이 없다. 게이코는 역시 한창 멋을 부릴 나이의 아가씨이다. 호화롭게 치장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초라한 모습만은 보이고 싶지 않은게 그녀의 마음이었다.
하지만 한 벌뿐인 코트는 동생에게 주어 버렸고 올해 바겐세일 때 살 생각으로 적립한 돈은 제물이나 여비로 없어지고 마는 것이다. 사람의 아름다움은 옷이 아니라고 억지로 자신에게 타일렀지만......
그 중 하나를 골라 대보며 거울에 비춰 보는 게이코의 표정이 왠지 착잡해 보인다.
다음날 코트 대신 털실로 짠 큰 쇼올을 두르고 게이코는 역으로 향했다.
교오토에 나가 신간선으로 가면 나고야까지 1시간 안팎이면 충분하지만 단 몇푼이라도 차삯이 싼 재래 철도를 이용하기로 했다.
플랫홈에서 기차를 기다리던 게이코에게 누군가 다가와서 아는 체를 한다.
놀라서 바라보니 나카가와였다.
"웬일로 게이코 양이 어디를 다 가지요?"
"네, 잠깐 다녀올 곳이 있어서요."
"희한하군. 게이코 양이 어디엘 가다니."
"나카가와 씨도 어딜 가세요?"
나? 나는 하코네까지 출장을 가지...... 전동차를 타면 돌아오는 길에 눈이 와도 안심이 되거든요. 그리고 끝난 다음에는 연회가 있고."
열차가 홈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내리는 사람이 다 내리자 출발한다는 신호의 벨소리가 들렸다.
"그럼......"
게이코가 가볍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기차에 오르자 나카가와가 급히 올라탔다.
"기다려요. 나도 탈 테니......"
움직이기 시작하는 열차 입구에 선 채로 게이코가 말했다.
"나카가와 씨, 괜찮아요? 급행을 타면 좀더 빨리 도착 할 텐데."
"이왕 탈 바에는 게이코 양과 함께 타는 편이 데이트 기분이 들어서 즐거운걸."
게이코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나카가와는 빈 자리를 찾아서 앉고 그의 맞은편 좌석에 게이코가 앉았다.
"무거워 보이는군요. 그 짐 선반에 얹는 게 어때요?"
"괜찮아요."
나카가와가 무릎 위의 짐을 억지로 뺏으려고 하자 게이코는 반사적으로 소중한 물건인 양 끌어안았다.
"뭐가 들었는데?"
"제단에 바칠 과자예요."
"장례식에 가요? 누가 죽었는데?"
"손님이에요."
그 말에 나카가와의 얼굴에 묘한 표정이 떠오른다. 그것은 어이없다는 심정과 한편으로는 감동하는 표정이었다.
"그랬었군. 출장이로군요. 여비를 아끼려고 재래선을 타고...... 게이코 양은 참 야무지군."
"아니에요."
"아니라니, 그럼 사적인 일로? 꽤 친했던 손님이로군. 게이코 양도 좋아했어요, 그 손님? 남자? 여자?"
질투를 느낀 듯한 나카가와는 무척 냉정하게 말했다.
곤혹스러워하며 게이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카가와는 그야말로 타이르는 듯한 태도로 말한다.
"이봐요, 게이코. 어떤 손님인지는 모르지만, 게이코는 자기 손님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그건 게이코의 착각이라구. 모든 손님은 회사의 손님이지. 그 증거로 손님이 가져다 주는 이익은 모두 기업의 이익이에요. 너무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게 상책이라구. 손님 장례식에 자기 비용으로 참석해야 할 의무도 책임도 게이코에게는 없어요. 다만 자기 만족일 뿐이지."
게이코는 그 말에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괜찮아요."
나카가와는 이번에는 부드러운 태도로 바꾸었다.
"그건 그렇다치고 그 메모 읽어 보았소?"
"......네."
"어때? 아니, 회답을 재촉하는 것은 아니오......"
게이코는 어떻게 거절할까 말을 찾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나 같은 것에게 고맙긴 하지만....... 나카가와 씨는 나를 오해하고 있어요. 나는 나카가와 씨가 생각하는 것 같은......"
"괜찮아. 내가 게이코를 어떻게 알든 그것은 내 주관의 문제이지 게이코가 곤란할 것은 하나도 없어요. 사랑은 화려한 착각이고 아름다운 환상이라고 하지 않소."
진심으로 설득하려는 나카가와였다.
"그런...... 나카가와 씨, 나는 지금까지 나카가와 씨를 남성으로 의식하고 접촉했던 것이 아니에요. 오해를 준 일이 있다면 사과하겠어요."
"하지만...... 나에게 친절하게 해주지 않았어요?"
"나는 가게에 찾아오는 손님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성의를 다해 섬기고 있어요."
"손님이라고? 나 당신네 가게에서 무엇 한 가지 산 일이 없는데 어째서 손님이오?"
"가게를 내고 있다는 것은 손님을 부르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특히 물건을 팔아 준다, 안 팔아 준다 하는 것과는 관계가 없어요. 일부러 가게에 찾아오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손님이에요. 만남을 소중이 여기라고 교육 받고 있어요."
"그건 어쨋든......차를 끓여 주고 무엇이든 나눠 주고......그런 때 당신은 진심으로 대해 주었고, 나에게 특별한 감정이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지 뭐요."
"미안해요. 제가 미숙해서 나카가와 씨에게 오해를 불러일으켰네요."
나카가와는 약간 화가 난 듯 정색을 하고 물었다.
"요컨데, 게이코 양은...... 나를 싫어하는 거요?"
"어째서 인간의 접촉을 남자와 여자, 좋고 싫은 것만으로 한정하는 거지요? 좋은 감정은 서로가 이해하고 친해진 뒤에 자연스럽게 성립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차장이 표 검사를 하러 와서 그들의 얘기는 잠시 중단 되었다.
"이봐요, 게이코, 나쁜 얘긴 안할게. 나하고 결혼하면 그런 점원 노릇 같은 비참한 일은 절대 안 시킬 거요. 정말이라구. 평생 행복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
"나카가와 씨는 우리들 같은 가게 일을 보는 사람을 비참하다고 보시나요? 나카가와 씨도 상인이 아닌가요?"
"우리들 같은 비즈니스맨과 동일시하면 곤란해. 당신들은 단순한 고용자가 아니오? 게다가 남의 어린애에게 종이접기를 해 주면서 비위를 맞추기도 하고 심성도 모르는 손님에게 편지를 써서 추파를 보내기도 하잖소. 이것을 비참하다고 하지 않을 수는 없소. 남의 마음을 끌려는 것은 호스티스나 하는 짓이지.
"말씀이 너무 지나치시군요."
"냉정하게 말한다면 손님은 수요가 있으니까 물건을 사러 오고 그 수요에 대한 공급의 차원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 당신들이란 말이오. 특별한 인간 관계만으로 수요와 공급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거든. 당신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그 일은 메마른 비즈니스란 말이오."
"아무렇게나 생각하세요. 사고 방식 차이니까요."
게이코의 머릿속에 상인의 자세를 예의 시구절이 떠오른다.
당신의 오늘의 일은 단지 한 사람이라도 좋다.
당신에게 고맙소! 하고 마음으로부터 인사를 하고 싶어하는 손님이라는 이름의 친구를 만드는 일이다.
다음 역에서 나카가와는 기차에서 내렸고 그는 미끄러져 가는 열차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로군." [ 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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