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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손님 1
게이코(惠子)의 출근길은 언제나 가볍고 상쾌하다.
몇 대째 살아왔는지 어림하기 힘들 만큼 오래된 주택들 중 사토( )라는 문패가 붙어 잇는 집 역시 무척 낡은 집이지만 게이코의 명랑한 소리와 수수하면서도 청순한 옷차림 때문인지 전혀 우중충해 보이지가 않는다.
"다녀오겠습니다."
집을 나서서 큰길까지 가는 동안 게이코는 아는 얼굴을 만날 때마다 상냥하게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 게이코 양. 이제나가요?"
"네''''''."
한겨울로 접어든 차가운 바람이 게이코의 낡은 옷 속으로 파고들지만 그녀는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힘차게 걸어간다.
게이코는 오오쓰(大津)의 중심가에 있는 과자점 춘추암(春秋庵)에서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다.
지금 그녀의 나이는 열아홉, 벌써 4년째 이곳에 근무하고 있다.
종업원이라야 겨우 열다섯 명 정도의 규모인 춘추암에서는 매일 아침 사원 식당에서 조례를 하는데 이 조례 시간에는 <한마디 제안>이라는 순서가 있다.
그날 아침 총무부장은 게이코를 지명하여 한마디 제안을 해 보도록 권유했다.
게이코는 수줍은 듯이 앞으로 나서서 고개를 숙였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아무래도 말문을 열기가 쑥스러웠지만, 모든 사람이 입을 모아 답례를 하자 게이코는 용기를 얻어 또렷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저는 얼마 전 어느 손님으로부터 한권의 시집을 받았습니다. 이 시집은 알기 쉬운 표현으로 상인의 생활자세를 노래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구절입니다.
조그만 가게임을
부끄러워 하지 말라
그 조그만 당신의 가게에
사람 마음의 아름다움을
가득 채우자.
모두들 진지한 표정으로 게이코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고, 게이코는 더욱 상기된 모습으로 말을 계속했다.
"저는 단숨에 그 시집을 읽고 나서 우리가 일하는 장사의 세계로구나 하고 겨우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멋진 세계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왜 이 시인과 같이 멋지게 보이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이유는 나날이 일에만 쫓겨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느 것과, 팔고 사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하지 않은 탓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 이 시에서는 똑같은 일이라도 자신의 마음에 따라 멋진 일이 되기도 하고 비참한 일이 되기도 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상입니다."
끝내고 돌아가려 하는 게이코에게 니시다 사장이 박수를 치며 앞으로 나왔다.
"게이코양, 고맙습니다. 수고했어요, 덕분에 좋은 공부를 했어요. 정말, 방금 게이코 양이 말한 대로예요. 그런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나를 포함해서 모두들 지금까지 여유가 너무 없었어요.
조금만 시간이 나면, 손님에게 많이 팔아라 하고 안달이 나도록 밀어부쳤던 게 틀림없어요. 누가 봐도 결코 좋아 보이지는 않았겠죠.
그렇지만 손님에게 아름다운 마음으로 대응한다는 거, 쉬운 일이 아니죠. 매상도 올리지 않으면 안 되니......
매우 모순을 띠고 있죠.
다만 우리 회사처럼 상품 자체의 구매력이 그다지 없는 조그만 가게에서 상점의 매력을 만들려고 생각한다면 사람의 매력 그것밖에 없다고 난 생각합니다.여려분 모두 이 문제를 생각해 보도록 합시다.
조례가 끝나고 게이코가 명랑한 모습으로 자신이 근무하는 지점으로 가고 있는데 춘추암의 지배인 가야마(加山)가 뒤따라와서,
"게이코양, 아까 그 시집, 나도 한번 읽고 싶은데......
누구 시집이죠?"
하고 물었다.
게이코는 가야마의 짐을 나누어 들려고 하지만 그는 괜찮다는 몸짓을 한다.
"오카다 데쓰라는 분의 시집입니다."
"누구한테 받은 거죠?"
"저도 잘 모르는 분이에요. 1년에 두세 번 정도 오시는 손님인걸요. 뭐하시는 분인지 모르겠어요. 그걸 받았을때 성함을 여쭈어 보았지만 '아니에요, 부담스러워할 것 없어요.' 라며 말씀해 주시지 않았습니다. '교오토에 갔다가 오오쓰의 아가시가 문득 생각나서 가져온 거예요.' 라고 말하셨어요. 도쿄 사람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좋은 손님 이군요. 고맙다고 말하는 진정한 의미가 바로 이런거죠. 좀처럼 있을 수 없는 일이 있었다는 거죠.
감사해야겠네요."
"그럼요,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을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말이죠."
"그렇습니까. 그 손님, 그 많은 과자점 중에서 일부러 우리가게에 와 주시는 거만으로도 고마운 일인데요. 더욱 감사해야겠네요. 그분, 또 오시면 지배인님께 알려 드리겠습니다."
춘추암은 그다지 큰 가게는 아니다.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중후한 감이 있도, 모든 비품들이 산뜻하게 정돈되어 있다. 손님이 기다리는 장소에 의자가 놓여 있어서 여유를 느끼게 한다.
할머니 손님 한 분이 게이코와 같이 일하는 나미코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 과자를 좋아했었지. 오늘은 영감이 돌아가신 날이어서 좋아하셨던 과자를 사고 싶다우."
"그렇습니까. 할아버지 돌아가신 지가 벌써 3년 이나 됐군요. 정말 세월이 빠르네요. 몇 개나 싸 드릴까요?"
"열다섯 개 줘요."
"알았습니다."
나미코가 과자를 포장하는 동안 게이코는 안쪽에서 차를 가져왔다.
"할머니, 어서 오세요. 고맙습니다. 추우실텐데 따끈한 차 한잔 드세요."
"게이코 양, 언제나 신세를 지는군요. 아참, 손녀 미도리가 게이코 양에게 에쁜 종이학을 받았다고 하던데? 얼마나 좋아하던지. 게이코 양, 아주 잘 접었던데. 솜씨가 좋더라구. 그럴 시간이 없을 텐데 언제 만들었지?"
"가게에 손님이 없을 때 접기도 하고, 집에서 쉬는 날 접기도 하고요."
"우리 미도리, 아가씨를 친한 친구로 생각하는 거 같애. 아직 초등학생인 주제에......"
"그래도 괜찮아요. 귀여운걸요. 친구로서 도움이 된다면 기쁜걸요."
나미코는 자기 가방에서 머플러를 꺼내 손으로 부벼 따뜻해진 것을 확인하고는, 과자를 싸서 자신의 가슴에 안아 가지고 온다.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주문하신 과자 열다섯개 넣어왔습니다. 할머니, 밖이 추우니까 제 머플러로 싸서 넣어 드릴게요."
그녀는 가슴에서 과자를 싼 머플러를 꺼내 건네 준다.
"아, 따뜻해요. 기분이 좋군. 고마워요. 아가씨들 젊은 데도 마음 쓰는 것이 보통이 아니에요. 얼마지요?"
안쪽에서 꽃을 준비하고 있던 유키코도 함께 밖으로 나온다.
"네, 천7백엔입니다."
추운 날시 때문인지 한산한 가게 앞에서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일동은 나란히 서서 한참동안 전송하고 있다.
유키코가 준비한 꽃을 현관에 걸고 있을 때 가야마가 들어오다 말을 건다.
"우...... 추워, 오늘은 추워서인지 조용하군. 참, 유키코 양 그 시집 좀 읽어봐요."
유키코는 계속 꽃을 만지면서,
"뭐라고 하셨죠? 시집이라요?"
"음, 유키코는 당직이어서 조례에 나오지 않았지. 오늘 게이코 양이 <한마디 제안>에서 시집 이야기를 했어요. 항상 게이코양의 이야기는 예리하지만 오늘은 특히 게이코 양다워서 좋았어요. 그래서......"
그때 지배인의 친구인 나카가와(中川)가 자동차를 타고 지나가다가 차를 멈추고 창밖으로 소리친다.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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