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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손님 3
이날 오후 다도회가 열리는 다실에서 일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가야마는 게이코에게 새삼스레 격려의 말을 했다.
"게이코양, 수고했어요. 피곤하죠?"
"아니에요. 저는 즐거웠는걸요."
"야마다 선생님은 멋있는 분이셔. 솔직하게 기뻐해 주시다니. 그것도 다도의 마음일까...... 그처럼 유명한 선생은 으스대어 솔직하지 못한 경우가 많은데도."
"그렇군요. 모두 좋은 사람들입니다."
"사람은 끼리끼리 모인다고 하니까...... 어떤 사람과 사귀느냐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해요."
"전 좋았어요. 모두 좋은 사람뿐이던걸요. 그보다 참, 지배인님, 오늘 아침 나카자와 씨와 매뉴얼 이야기를 하셨는데, 매뉴얼이라는 게 뭐죠?"
"흠, 또 게이코 양의 호기심이 시작됐나...... 매뉴얼이란 안내서라고 할까 텍스트라고 말해야 할까...... 세상이 복잡해지면서 기본을 중요시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게 많아지죠. 특히 고도의 기술 사회이니까 매뉴얼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어째서 나카가와 씨에게 반대하셨죠?"
"아니에요, 난 매뉴얼을 부저하는 것은 아니에요. 나카가와가 말한는 접객 관계의 매뉴얼은 기본적인 사고 방식이 틀려있어요. 가게나 파는 측의 사정에서 발상하는 매뉴얼은 돈을 벌기 위해서 손님을 적당히 접객하는 것과 다를 바 없어요."
"그렇군요. 접객이라 하면, 손님의 입장에 서서 해야겠죠."
"그렇고말고. 그러므로 그런 매뉴얼은 손님 측에서 보면 천편일률적인 것밖에 되지 않는 거죠.
"그래서 우리 가게에서는, 형식보다 기본적인 생각을 중시하라고 하시는군요.그것도 매뉴얼입니까?"
"바로 그거예요. 그 마음을 잃으면 생각과 행동이 이상하게 되어, 가게가 단순히 돈과 물건의 교환소가 되어 버리죠. 그렇다면 자동판매기로 충분하지 사람은 필요가 없지 않겠어요?"
"여러 훌륭한 사람과 만나, 그분들과 마음이 통하기 때문에 우리 일의 기쁨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요, 인간을 이득과 손해의 대상으로써만 생각한다면 서로 즐거워지는 일의 멋을 포기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인간이란...... 인간으로 태어난 것을 기뻐하지 않으면 안돼죠."
"인간이니까, 효율을 올려서 수익을 얻어 풍족하게 살고자하는 욕심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뭔가 쓸쓸해요. 물질이 풍부하지 않으면 행복하지 않다고 하는 사고 방식......"
두 사람의 대화는 진지하기만 했다.
그날 밤 늦은 시각 마지막으로 온 손님이 어둠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전송을 하고 나서 게이코는 남은 과자를 정리하고 청소도 끝마친 뒤 내일의 준비를 했다.
유난히 추운 하루도 끝났다. 오늘도 여러 가지 일이 있었다. 손님들도 많이 와 주었으므로 고마운 일이다.
게이코가 사복으로 갈아 입고 나와 보니 불꺼진 가게 주위는 더욱 차갑고 조용하기만 하다.
수수한 옷에 털로 짠 커다란 쇼올을 머리까지 완전히 뒤집어쓴 수녀와 같은 게이코의 모습이 어둠 속으로 멀어져갔다.
게이코가 큰길로 나섰을 때였다. 지붕 위까지 가득 눈이 쌓인 자동차 한대가 어떤 집을 찾는 듯 옆을 스쳐가고 있었다.
게이코가 혹시나 하여 고개를 돌아보니 자동차는 가게쪽을로 향하고 있었다.
그 자동차가 춘추암 앞쪽으로 방향을 틀었을 때, 문득 '저 차, 과자를 사러 오는 건 아닐가' 하고 게이코는 생각했다.
그러자 게이코는 이미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가게쪽으로 뛰어 가고 있었다.
역시 그 차는 춘추암 앞에 멈추어 있었다.
게이코가 자동차의 문에 노크를 하자 안에서 천천히 창이 열린다.
게이코는 불쑥 물었다.
"혹시 과자가 필요하십니까?"
"여기, 춘추암이죠?"
"네, 그렇습니다."
"이미 끝났군요."
"네, 그런데 전 이 가게 사람이니까요...... 과자가 필요 하시다면 곧 가게를 열겠습니다만......"
"정말입니까? 그거 고맙습니다. 부탁합니다."
"네, 금방 열 테니까 잠시 차 안에서 기다려 주시겠어요? 밖은 추우니까요."
"네......"
게이코는 가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 안의 조명을 켠 게이코는 다시 나와서 손님을 안내했다.
"많이 기다리셨습니다. 어서 들어오세요."
"미안합니다. 번거롭게 해서."
게이코는 가스 스토브에 불을 붙였다.
"먼 곳까지 이렇게 찾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어서 들어 오세요. 지금 난방을 넣었으니까요."
45, 6세 쯤으로 보이는 점잖은 신사의 이름은 시로도(城方)이다.
"다행입니다. 고맙습니다. 닫혀 있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하면서 왔습니다."
게이코는 서둘러 진열 케이스의 하얀 덮개 천을 벗기면서,
"약간 늦으셨습니다만 이렇게라도 때를 맞춰 오셔서 다행입니다."
선 채로 시로도는 안도하면서 말했다.
"실은, 어머니가 암으로 오랫동안 병상에 계셨는데 연세가 연세이신지라 아무래도 심상치 않아서...... 아침에도 의사가 '앞으로 하루 이틀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또 '누군가 만나게 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알리세요. 잡숫고 싶은 것이 있으면 잡숫게 하세요'라고 하더군요."
게이코의 얼굴색이 점차 변해갔다.
"그래서 '어머니, 뭐 잡숫고 싶은 것 있습니까?' 라고 여쭈었습니다. 그랬더니 '전에 오오쓰에 있는 춘추암의 과자를 먹었더니 매우 맛있더라. 한번 더 그걸 먹고 싶다.' 고 하셨습니다. 그 과자 이름을 아시느냐고 물었더니 잊었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과자라면 비싼 것도 아닙니다, 제가 곧 사올 테니까 기다리세요' 하고 집을 나온 겁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무키 부근에 눈이 많이 와서 고속도로에 차들이 줄줄이 밀리는 거예요. 초조한 마음으로 겨우 도착했더니 이미 가게가 닫혀 있지 않겠어요?
어머니가 건강하시다면 다음 기회도 있겠지만 오늘 내일을 알 수 없는 환자라서...... 이 기회를 놓치면 생애에 두 번 다시 기회도 없을 텐데, 하고 난감해 하던 차였어요.
실망하실 어머니 얼굴이 떠올라서...... 그런데 다행히 이처럼 친절한 아가씨를 만나서...... 정말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게이코의 얼굴이 감동으로 굳어져 간다.
"그러셨어요......"
게이코의 얼굴에 어떤 결의마저 감돌았다.
게이코는 이 이야기를 듣고 감격해 버려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다. 어쨌든 이 세상 마지막으로 우리 가게의 과자가 먹고 싶다고 하는 손님에게 어떻게 보답하는 것이 좋을까를 곰곰이 생각했다.
게이코는 자신의 경우로 바꿔 생각해 보았다. 내 어머니도 병상에 계신다, 그 어머니가 만약 이 세상에서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어디의 무엇이 먹고 싶다고 하시면 나도 무슨 일이 있어도 사러 달려가겠지...... 그럴 경우 그 가게에서 어떻게 응대해 주면 기쁠까 라고. 자신이 그렇게 대접받아서 기쁜 그대로 손님이게 해드리리라고 생각했다.
게이코는 깊은 생각에서 깨어나서,
"알았습니다. 그런 사정이라면, 과자를 고르는 것은 저한테 맡겨 주시지 않겠어요?"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부탁합니다."
게이코는 시로도에게 차 한잔을 대접하고서 바로 과자를 고르기 시작했다.
맡겨 달라고는 했지만 내심으로는 곤란하기도 했다. 중병에 걸린 분이 먹을 수 있어야 하니까 힘 들여 씹는 것과, 떡처럼 목에 걸릴 위험이 있는 것을 우선 제외하고 부드러운 과자만으로 2개씩 세트했다.
그때 문득, 이 과자와 다르다고 하시면 어쩌나 생각했다. 그런 때는 이 댁을 알아 놓았다가 다시 갖다 드리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저...... 괜찮으시다면 주소와 성함과 전화 번호를, 저기 메모지에 써 주시겠어요?"
"네에, 그러지요."
시로도는 메모지에 주소, 성명, 전화 번호를 적었다.
과자 준비가 다 되자 게이코는 시로도에게 건네 주며,
"너무 기다리시게 했습니다. 이것, 제 나름으로 적당하다 싶은 것을 골라서 싸 보았습니다. 아무쪼록 어머니께서 맛있게 드셨으면 좋겠네요."
시로도는 지갑을 꺼내면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밤늦게 죄송했습니다. 그런데 얼맙니까?"
"이 과자는 대금을 받을 수 없습니다."
게이코의 목소리는 아주 결연했다.
"어째서죠?"
시로도는 의하해 했다.
"이 세상 마지막으로 우리 가게의 과자를 잡숫고 싶다는 손님께 모처럼 저희들의 성의니까요."
"그래도...... 일단 닫았던 가게를 열어 주고, 게다가 수고를 끼치고 과자까지 무료로 받아 돌아간다면 벌받을 거예요. 어떻든 과자값은 받아 주세요. 부탁입니다."
"손님, 그런말씀 마시고 그대로 저희의 성의를 받아 주시지 않겠습니까? 부탁드립니다."ㅍ
"그렇습니까. 정 그렇게 이야기하시니 염치없지만 고맙게 받겠습니다.어머니도 기뻐하실거예요. 아가씨 이름이라도 알려 주겠어요?"
"게이코라고 합니다."
"게이코 양, 실례입니다만 몇 살이죠?"
"열아홉입니다."
"내 딸보다 한 살 위인데 훨씬 똑똑하고 총명하군요. 정말 훌륭해요."
"그보다, 어머님께서 기다리십니다. 한시라고 빨리 돌아가셔서 잡수시게 해 드리셔야죠."
몇 번이나 감사하다고 인사하면서도 시로도는 말만으로는 나타낼 수 없는 어떤 감동을 느꼈다.
"네, 그렇군요. 고마워요, 게이코양. 정말 고맙습니다."
밖에서는 다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차에 타려고 하는 시로도에게 게이코는 당부를 했다.
"아무쪼록 운전 조심하셔서 돌아가십시오. 고맙습니다.
어머님 잘......"
눈물을 글썽인 채 시로도는 또렷한 목소리로,
"고마워요, 게이코 양. 오늘 밤 일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거예요......"
하고 시동을 걸었다.
서서히 차가 움직였다. 백밀러로 바라보니 게이코는 몇번이나 인사를 하며 전송하고 있었다.
게이코는 마음으로부터 그 할머니의 안녕을 빌었다. 부모의 효성이 지극한 분인가. 사람의 마음이란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해 온 게이코는 부디 그분이 무사히 집에 돌아가서, 어머니의 작은 소망에 응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빌었다.
다시 가게로 돌아온 게이코는 가스를 끄고 나서 자신의 가방속에서 돈이 들어 있는 봉투를 꺼냈다. 봉투에는 <코트 적립금>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 속에서 천 7백 엔을 꺼내어 그날 매상에 추가시킨 게이코는 불을끄고 밖으로 나왔다. [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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